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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 흑인 역사를 그린 화가 - 제이콥 로렌스 탄생

by plutusmea 2025. 9. 7.

1917년 9월 7일 미국 흑인 화가 제이콥 로렌스(Jacob Lawrence, 1917-2000)가 태어났다. 《마이그레이션 시리즈》 등으로 흑인 역사를 시각화한 그의 예술 세계를 살펴본다.

 

탄생과 성장의 배경

1917년 9월 7일, 미국 뉴저지 애틀랜틱시티에서 태어난 제이콥 로렌스(Jacob Lawrence)는 흑인 예술가로서 20세기 미국 미술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의 부모는 당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피해 북부로 이주한 수많은 흑인 가정 중 하나였다. 로렌스는 뉴욕 할렘에서 성장하며 ‘할렘 르네상스’라 불린 문화적 황금기를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할렘 르네상스'와 예술적 토양

할렘은 당시 재즈, 시, 연극, 미술이 융합된 흑인 문화의 중심지였다. 로렌스는 어린 시절 지역 커뮤니티 아트센터에서 무료 미술 수업을 들으며 자신의 재능을 키워갔다.

 

그는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서 예술이 공동체의 역사와 목소리를 담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재즈의 리듬과 시각적 반복 구조는 그의 작품 세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의 그림이 지닌 박진감과 리듬감은 할렘 거리의 음악적 풍경과도 맞닿아 있다.

 

Jacob Lawrence (1941, Wikimedia Commons)
Jacob Lawrence (1941, Wikimedia Commons)

 

 

역사적 인물 연작과 흑인 해방의 서사

로렌스는 흑인 공동체의 삶과 역사를 화폭에 담는 데 전념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 그는 아이티 해방을 이끈 혁명가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 1743-1803),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참정권 확대론자였던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1818-1895), 흑인 해방 운동가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 1820-1913) 등의 생애를 연작으로 제작했다.

 

이 작품들은 단순히 위인을 기념한 것이 아니라 흑인의 자유와 존엄을 향한 투쟁사를 집단적 기억으로 남기려는 시도였다. 그는 역사서를 읽고 연구하여 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강렬한 색채와 간결한 구도로 재해석했다.

 

 

《마이그레이션 시리즈》의 탄생

1940~41년 로렌스는 《마이그레이션 시리즈》(The Migration Series)를 완성했다. 총 60점으로 이루어진 이 연작은 20세기 초 수백만 명의 흑인들이 남부의 차별적 환경을 떠나 북부 도시로 이주한 과정을 담았다.

 

작품 속 인물들은 기차역, 공장, 도시 풍경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그들의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단순한 선과 대담한 색채, 그리고 장면 간의 리듬감은 관객에게 한 편의 서사시를 보는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이 연작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워싱턴 필립스 컬렉션에 분할 소장되었고 오늘날까지도 미국 사회사의 시각적 기록으로 평가된다.

 

화풍과 표현의 특징

로렌스의 회화는 흔히 ‘다이나믹 큐비즘’(Dynamic Cubism)이라 불린다. 입체주의의 단순화된 구성을 차용하되 이를 흑인의 역사와 일상에 맞게 재해석했다.

 

강렬한 빨강, 파랑, 노랑의 대비는 인물들의 감정을 고조시키며 검은 윤곽선은 이야기의 흐름을 명확히 한다. 그는 회화적 기교보다 메시지를 중시했고 세부 묘사보다는 상징적 압축과 구조적 단순화를 통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전쟁과 사회 참여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로렌스는 미군에 입대해 미국 연안경비대에서 복무했다. 그는 복무 중에도 그림을 그리며 전쟁의 현실을 기록했고 흑인 병사들이 겪는 차별과 고충을 작품에 담았다.

 

이후에도 그는 미국 사회의 모순과 인종차별을 고발하는 시선을 놓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예술적 창작물이 아니라 사회적 참여와 증언의 도구였다.

 

교육자의 삶

1960년대 이후 로렌스는 워싱턴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그는 예술이 개인적 표현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강조했다.

 

흑인 예술가들에게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적 무대에서 목소리를 내는 길을, 모든 학생들에게는 예술을 통한 사회 참여의 가능성을 일깨워 주었다.

 

 

재평가와 유산

제이콥 로렌스는 2000년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작품은 여전히 미국 미술사와 흑인사의 교차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마이그레이션 시리즈》는 미국 사회 구조와 인종 문제를 집단적 기억으로 승화시킨 기록이다.

 

오늘날 미국의 주요 미술관과 대학에서 그의 작품을 연구하고 전시하며 그는 흑인 공동체를 넘어 인류 보편의 자유와 존엄을 상징하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다.

 

제이콥 로렌스의 예술은 억압받은 공동체의 목소리를 가시화하고 침묵 속에 묻힐 뻔한 역사를 시각적 언어로 새겨 넣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이름 없는 수많은 흑인의 삶을 대변하며 강렬한 색채와 단순한 선은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는 “예술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다”라는 신념으로 평생을 살았다. 오늘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예술이 인간 존엄과 공동체의 권리를 어떻게 증언할 수 있는지를 되새기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