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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 기타로 세상을 바꾸다 - 지미 헨드릭스의 사망

by plutusmea 2025. 9. 29.

 

1970년 9월 18일,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세상을 떠났다. 블루스와 록을 결합해 전자기타의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 그의 음악적 혁신과 시대적 의미를 되짚는다.

 

기타로 세상을 바꾼 음악가, 지미 헨드릭스

1970년 9월 18일 음악사에 거대한 공백이 생겼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가 런던에서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단순히 뛰어난 기타 연주자가 아니라 일렉트릭 기타라는 악기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혁신가였다. 헨드릭스의 연주는 전자 기술과 인간의 감각이 결합한 새로운 예술의 언어였으며 짧은 생애 동안 음악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Jimi Hendrix at the amusement park Gröna Lund in Stockholm, Sweden, May 24, 1967. (Wikimedia Commons)
Jimi Hendrix at the amusement park Gröna Lund in Stockholm, Sweden, May 24, 1967.

 

 

시애틀의 소년에서 세계의 무대로

헨드릭스는 1942년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가난하고 불안정한 가정 환경 속에서 성장했지만 음악만큼은 삶의 피난처였다. 그는 버려진 우쿨렐레와 낡은 기타를 손에 넣으며 독학으로 연주법을 익혔다.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기에 그의 방식은 독창적이었다.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거꾸로 메고 왼손으로 연주하는 그의 스타일은 외형부터 남달랐다.

 

군 복무 후 그는 R&B 밴드와 세션 활동을 통해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당시 미국 음악계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전환점은 런던행이었다. 1966년 베이시스트 채스 챈들러(Chas Chandler)의 눈에 띄어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단숨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꼽히던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조차 무대 뒤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기타 소리를 빚어내다

헨드릭스가 만들어낸 소리는 전례가 없었다. 와우 페달로 만들어내는 목소리 같은 울림, 디스토션을 극대화한 거친 질감, 증폭기의 피드백을 통제하는 기술 등은 모두 당시로서는 실험적인 시도였다. 그는 소리를 단순히 증폭된 음향이 아니라 마치 조형 가능한 질료처럼 여겼다.

 

그의 대표곡 《Purple Haze》는 록의 사이키델릭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불협화음과 강렬한 리프가 뒤섞인 이 곡은 듣는 이를 현실에서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듯한 힘을 지녔다. 《Voodoo Child》는 기타가 인간의 감정과 직접적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Little Wing》은 전자기타로도 서정과 시적 감수성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설을 만든 무대 - 몬터레이와 우드스톡

1967년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그는 기타에 불을 붙이며 무대를 마무리했다. 불길 속에서 파괴되고 재탄생하는 악기는 당시 젊은 세대가 느끼던 불안과 해방감을 압축한 상징이었다. 관객들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의식과도 같은 순간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그는 《성조기》 변주를 연주했다. 왜곡된 기타음 속에서 군가와 폭격 소리를 연상시키는 불협화음이 울려 퍼졌다. 이는 베트남 전쟁으로 분열된 미국 사회에 대한 가장 강렬한 항의 중 하나였다. 헨드릭스의 연주는 정치적 구호 없이도 시대의 비극을 증언하는 음악적 언어가 되었다.

 

화려함 속의 고독과 압박

성공은 그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동시에 무거운 짐이 되었다. 그는 연이어 음반을 발표하고 세계 투어를 이어갔지만, 소속사와의 갈등, 팬들의 기대, 끝없는 공연 일정에 지쳐갔다. 그의 음악은 자유를 외쳤지만 그의 삶은 점점 옥죄여 갔다. 약물과 알코올은 그 고통을 잠시 잊게 했지만 결국 파멸을 앞당기는 도구가 되었다. 1970년 9월 런던의 한 호텔에서 그는 영원히 눈을 감았다.

 

27클럽과 그 이후의 유산

헨드릭스의 죽음은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 1942-1969), 제니스 조플린(Janis Joplin, 1943-1970) 등과 함께 이른바 ‘27클럽’의 전설을 만들었다.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떠난 이들의 공통점은 예술적 정점에서 세상을 등졌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지미 헨드릭스의 경우 그 상실감은 더욱 깊었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실험적이고 미래지향적이었기에 만약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어떤 음악을 만들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후대의 음악가를 자극한다.

 

그의 영향을 받은 뮤지션은 헤아릴 수 없다.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 1954-1990),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1945-), 프린스(Prince Rogers Nelson, 1958-2016), U2의 디 에지(The Edge, Dave Evans, 1961-),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존 프루시안테(John Anthony Frusciante, 1970-) 등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지미 헨드릭스를 자신들의 출발점으로 꼽았다. 전자음악 프로듀서들 역시 그의 피드백 실험에서 영감을 얻었다. 헨드릭스가 열어놓은 세계는 록을 넘어 전자음악과 사운드 아트까지 확장되었다.

 

 

영원히 살아 있는 기타의 울림

지미 헨드릭스는 27년의 생애 동안 음악을 단지 즐기는 대상에서 예술적 실험과 시대적 발언의 장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기타는 전쟁과 평화, 자유와 억압, 희열과 고통을 모두 담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의 음반은 꾸준히 팔리고, 그의 연주는 새로운 세대의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준다.

 

9월 18일은 한 시대의 아이콘이 떠난 날이자, 음악이 어떻게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날이다. 헨드릭스의 기타는 죽음을 넘어 여전히 살아 있으며 그 불협화음 속에서 우리는 자유와 혁신의 울림을 듣는다.

 

The Jimi Hendrix Experience - Voodoo Child (Slight Return) (Live In Maui, 1970)

https://www.youtube.com/watch?v=qFfnlYbFE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