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9월 17일, 독일의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모차르트 오페라와 독일 가곡 해석에서 빛을 발한 그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음악사에 전설로 남아 있다.
성악사에서 빛나는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Fritz Wunderlich, 1930~1966)는 20세기 성악사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 중 하나다. 그는 독일 테너로서 불과 서른다섯 해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남긴 기록과 무대 위의 전설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소환된다.
1966년 9월 17일 그가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건은 음악계를 충격과 슬픔 속에 빠뜨렸다. 많은 평론가들이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카라얀과 더불어 모차르트 오페라 해석의 황금기를 열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죽음은 시대의 손실이었다.
성악가로 성장
분덜리히는 1930년 9월 26일, 독일 팔츠 지방 쿠젤(Kusel)의 음악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둘 다 음악인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풍부한 음악적 환경을 누렸다.
처음에는 트럼펫 연주자로 진로를 잡았으나 슈투트가르트 음악원에 입학한 뒤 교수들의 권유로 성악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특별히 화려하거나 강력하지 않았지만 투명한 음색과 정확한 호흡, 그리고 언어적 명료함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독일어 가사 전달력이 탁월해 가곡과 오페라 모두에서 인정받았다.
모차르트 해석의 이상
분덜리히를 가장 잘 설명하는 장르는 단연 모차르트 오페라다. 《마술피리》의 타미노, 《후궁으로부터의 구출》의 벨몬테, 《피가로의 결혼》의 돈 오타비오 등 모차르트의 주역 테너는 그의 레퍼토리의 중심이었다.
그는 불필요한 감정 과잉을 배제하고 음 하나하나에 투명한 빛을 실어냈다. 그래서 청중은 그의 노래에서 언제나 순수함과 고결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에서 들려준 그의 모차르트 해석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며 음반을 통해서도 그 섬세한 해석을 확인할 수 있다.
가곡 무대의 성취
분덜리히는 예술 가곡(Lied) 해석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겨울 나그네》와 같은 대형 가곡집은 이미 수많은 테너와 바리톤이 불러온 레퍼토리였지만 분덜리히의 목소리는 그 속에서 유독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시의 뉘앙스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음악적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데 능숙했다. 특히 중간 음역대에서의 따뜻한 울림은 슈베르트의 서정성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평론가들은 그의 가곡 해석을 두고 “시인이 의도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목소리로 옮겨 놓았다”고 평했다.
레코딩 시대의 만남
1960년대는 음반 산업이 급격히 확장되던 시기였다. 분덜리히는 이 흐름과 완벽하게 맞물려 다수의 스튜디오 녹음을 남겼다. 카라얀과 함께한 모차르트 미사곡,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그리고 수많은 독일 가곡집은 지금도 클래식 음반 시장에서 꾸준히 재발매된다.
그의 목소리가 특별히 빛나는 이유는 단지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다. 음반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노래는 1960년대 독일 성악의 미학과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낸 기록이기도 하다. 분덜리히는 레코딩을 통해 ‘영원히 젊은 테너’로 남을 수 있었다.
비극적 사고
그러나 그의 삶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막을 내렸다. 1966년 9월, 미국 무대 데뷔를 앞두고 있던 그는 친구 집에서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추락했고 머리에 치명적인 외상을 입었다.
불과 며칠 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었고, 세계 각국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일정이 빼곡히 잡혀 있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당시 언론은 “독일 성악계의 가장 밝은 별이 꺼졌다”고 보도했고 팬들과 동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적 비극을 넘어 음악사적 공백으로 이어졌다.
불세출의 테너
분덜리히가 활동한 기간은 불과 10여 년 남짓이었지만 그가 남긴 목소리는 세대를 뛰어넘어 살아 있다. 특히 《마술피리》의 아리아 〈이 이상한 소녀여〉와 슈베르트의 가곡 《아베 마리아》는 그의 순수하고 맑은 음색을 대표하는 곡으로 손꼽힌다.
음반으로 접한 청중들은 지금도 그의 목소리를 통해 독일 낭만주의의 본질을 경험한다. 분덜리히는 죽었지만 그의 노래는 여전히 오늘날 청중의 마음을 울린다.
그의 짧은 생애는 미완의 가능성을 남겼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그의 목소리를 영원히 젊게 만들었다. 만약 더 오래 살았다면 성숙한 해석과 풍부한 레퍼토리를 남겼을 것이지만 지금 남아 있는 그의 음반은 늘 청춘의 빛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청중은 언제나 “그가 살아 있었다면”이라는 아쉬움과 동시에 "그가 남긴 순간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위안을 함께 느낀다. 프리츠 분덜리히의 이름은 오늘도 고전 성악의 이상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TnruLf_h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