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은 착시와 무한의 세계를 탐구한 판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 C. 에셔)의 탄생일이다. 수학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그의 작품 세계와 현대적 의의를 살펴본다.
수학과 예술의 경계를 넘은 탄생
1898년 9월 10일 네덜란드 레이우아르던(Leeuwarden)에서 한 소년이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오늘날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M. C. 에셔다. (참고로 '마우리츠'를 영어식으로 '모리츠'라고 발음·표기하는 경우도 있으나 네덜란드어 발음에 따라 '마우리츠'라고 표기하는 것이 바르다.)
M. C. 에셔는 분명 미술가이지만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미술의 범주에만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판화라는 고전적 매체를 사용해 무한 반복, 기하학적 구조, 시각적 역설을 구현했다.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에 머무르지 않고 수학과 철학, 건축과 과학을 동시에 탐구한 그의 작품은 20세기 예술사의 독특한 지점을 차지한다.
초기 성장과 미술 수업
에셔는 유년 시절 건강이 좋지 않아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미술적 재능은 일찍 드러났다. 1919년 하를럼(Haarlem) 건축미술학교에서 수학하며 본래 건축을 공부하려 했으나 곧 판화 수업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때 습득한 목판화와 석판화 기술이 훗날 그의 독창적 세계를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는 그림을 단순히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탐구하는 방법으로 여겼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의 발견
1920년대 에셔는 이탈리아 남부와 스페인을 여행했다. 특히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Alhambra) 궁전에서 본 이슬람식 기하학 무늬는 그의 인생을 바꾼 경험이었다.
기하학적 문양과 반복 구조에 매혹된 그는 이후 테셀레이션(tessellation, 평면을 빈틈없이 채우는 도형 배열)을 작품의 핵심 요소로 삼았다. 물고기, 새, 도마뱀 같은 자연의 형상이 수학적 규칙에 따라 무한히 반복되는 그의 판화는 이 시기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착시와 불가능한 세계
에셔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작품들은 ‘불가능한 구조’와 ‘무한’을 다룬 판화들이다. 《상대성》에서는 계단이 위와 아래로 동시에 연결된 역설적 공간이 펼쳐지고, 《오름과 내림》에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위로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오르내린다.
이러한 착시는 인간의 지각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드러내며, 동시에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는 수학을 통해 예술적 상상력을 확장했고, 예술을 통해 수학적 구조의 아름다움을 시각화했다.
과학과 예술을 잇는 다리
20세기 중반 수학자와 과학자들은 에셔의 작품을 단순한 미술적 실험이 아니라 수학적 탐구의 시각화로 보았다. 특히 대칭 그룹 이론, 무한 집합, 기하학적 변환을 설명할 때 그의 판화가 교육적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반대로 수학적 원리가 에셔의 작품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이 상호작용은 학문 간 장벽을 넘어선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학자도 아니고 공학자도 아니었지만, 그의 작품은 수많은 연구자가 개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중문화 속의 에셔
에셔의 작품은 순수미술을 넘어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음반 커버 디자인, 영화 속 장면, 광고 이미지에 그의 착시적 구도가 빈번히 차용되었다.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나 레드 제플린의 음반에는 에셔풍의 이미지가 사용되었으며,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셉션》은 에셔의 불가능한 계단을 직접적으로 오마주했다.
이러한 차용은 그의 예술이 예술가들만의 언어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 시각 체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예술과 삶의 긴장
에셔는 생전에 화단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작품은 아방가르드 회화나 추상미술의 흐름과 달리 수학적 구조와 규율에 기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길을 고집했고, 이를 통해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다.
그는 “나는 수학자가 아니다. 그저 놀라운 구조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사람일 뿐이다”라고 말했지만, 그의 작업은 수학자 못지않은 통찰을 담고 있었다. 규칙과 자유, 계산과 상상력의 균형 속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을 완성했다.
에셔가 남긴 유산
에셔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예술이 경계를 넘어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는 예술과 수학, 철학과 대중문화를 잇는 다리였으며 무한과 불가능을 시각화한 예술가였다. 그의 판화 속 끝없는 반복과 착시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동시에 사유를 자극한다.
“예술은 사유의 도구이며, 사유는 예술의 영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