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8월 31일, 브레히트와 쿠르트 바일이 《서푼짜리 오페라》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고전 오페라 형식을 해체하고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아 현대극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다.
브레히트와 바일, 무대 위에 혁신을 불러오다
1928년 8월 31일, 독일 베를린의 쉬프바우어담 극장(Theater am Schiffbauerdamm)에서 전통적인 연극과 음악극의 경계를 허무는 공연이 막을 올렸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대본과 쿠르트 바일(Kurt Weill)의 음악으로 탄생한 《서푼짜리 오페라(Die Dreigroschenoper)》는 당시 유럽 연극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사건이었다. 사회적 메시지와 대중 음악, 실험적 무대 장치가 결합된 이 작품은 예술의 역할과 관객의 위치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하도록 유도했다.
브레히트가 구상한 극장, 감동이 아닌 사유의 공간
브레히트는 연극이 단지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는 오락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는 관객이 등장인물의 운명에 몰입하기보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사고하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소격 효과(거리두기 효과, Verfremdungseffekt)’라 불리는 극이론을 고안했고, 《서푼짜리 오페라》는 이 원칙을 비교적 대중적인 형태로 구현한 첫 작품이었다.
극 중 배우는 감정을 몰입하여 표현하기보다는 자신이 연기하고 있음을 의식적으로 드러낸다. 노래는 이야기의 정서적 고조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서사를 중단하고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브레히트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관객의 이성적 판단을 자극하는 연극을 꿈꿨다.
매키 나이프와 피치엄, 도덕과 범죄의 경계에서
《서푼짜리 오페라》는 존 게이(John Gay)의 18세기 풍자극 《거지 오페라(The Beggar’s Opera)》를 기반으로 한다.
브레히트는 이 고전을 각색하여 당대의 빈곤과 위선,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더욱 날카롭게 풍자했다. 주인공 매키 나이프(MacHeath the Knife)는 런던 뒷골목의 범죄자지만 사회 제도 속에서 오히려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부패한 인물들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상인 피치엄(Peachum)은 ‘거지 길들이기 사업’을 운영하며 이윤을 추구하고 경찰과의 유착관계도 숨기지 않는다. 브레히트는 이 극을 통해 범죄와 합법적 착취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드러내고 사회 구조 자체에 질문을 던졌다.

쿠르트 바일, 음악으로 해체와 비판을 이끌다
작곡가 쿠르트 바일은 《서푼짜리 오페라》를 통해 고전 오페라의 서정성과는 전혀 다른 음악적 언어를 선보였다. 그는 재즈, 탱고, 군악대 음악 등 대중적이고 다채로운 장르를 활용했으며 불협화음과 단조로운 선율을 통해 통속적인 감정 이입을 차단했다.
서곡으로 등장하는 〈서푼짜리 소곡〉(Die Moritat von Mackie Messer, 영어권에서는 〈Mack the Knife〉)은 범죄자의 악행을 서정적인 멜로디에 실어 노래하는데, 그 반어적 구조는 청중에게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도록 만든다. 이 곡은 이후 루이 암스트롱,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 등에 의해 재해석되며 재즈 명곡으로 자리잡게 된다.
실험극에서 대중극으로, 예술의 가능성을 넓히다
《서푼짜리 오페라》는 초연 당시 연극계 내부에서도 논쟁적인 작품이었다. 발표 전 브레히트와 바일 모두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았고 일부 언론은 비판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으며 공연은 연일 매진되었다.
이 작품은 실험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지닌 드문 사례로 평가받는다. 관객은 익숙한 형식을 기대하며 극장을 찾았지만, 그곳에서 낯선 무대와 직접 말하는 배우, 전통과 어긋나는 음악, 불편한 메시지를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관습을 해체하고 예술의 새로운 기능을 제안하는 데 성공했다.
《서푼짜리 오페라》의 유산
이 작품은 1933년 나치 집권 이전까지 유럽 전역에서 수백 회 이상 공연되었고 이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언어와 연출로 재공연되었다. 나치 정권 하에서는 브레히트와 바일 모두 망명해야 했고 그들의 예술은 탄압받았지만, 《서푼짜리 오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세대의 창작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이 작품은 고전으로 분류되지만 그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게 다가온다. 무엇이 범죄이고 무엇이 권력인가? 예술은 어떻게 사회 구조에 개입할 수 있는가? 브레히트의 연극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관객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서푼짜리 오페라》는 그런 의미에서 ‘보고 감동하게 만드는 극'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드는 극’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Z0OOHLWo4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