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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 세기의 디바 - 마리아 칼라스의 비상

by plutusmea 2025. 7. 19.

 

세기의 소프라노 - 마리아 칼라스의 비상

1947년 8월 3일, 이탈리아 베로나의 고대 원형극장인 아레나 디 베로나(Arena di Verona)에 모인 관객들은 실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밤을 맞이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젊은 소프라노는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당시 23세의 미국 태생 그리스계 성악가였다.

 

그녀는 아밀카레 폰키엘리(Amilcare Ponchielli)의 오페라 《조콘다(La Gioconda)》에서 주연 배우를 맡아 극적인 서정성과 불꽃 같은 드라마를 가득 담은 연기를 펼쳤다. 그것은 단순한 공연 이상의 사건이었다. 칼라스는 이날 무대를 통해 단숨에 국제 성악계의 중심으로 떠올랐고 20세기 오페라의 신화를 연 거장의 첫 장을 펼쳤다.

 

전쟁을 뚫고 도착한 무대

마리아 칼라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리스 아테네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1941년 무대 데뷔를 했지만 당시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칼라스는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이탈리아로 향한다. 베로나 아레나에서 그녀를 기용한 것은 이 극장의 지휘자이자 연출가였던 티치아노 모넬리(Tiziano Monelli)와 조르조 칼라브레세(Giorgio Calabrese)였는데, 이들은 칼라스의 역량을 단번에 간파하고 주연 배역을 맡긴 것이다.

 

이 역할은 당시에도 극악한 난이도로 악명 높았다. 폭넓은 음역, 다양한 감정 표현, 극적인 긴장감과 무대 존재감을 모두 요구하는 배역으로, 여느 신인에게는 도전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칼라스는 처음부터 이 무대를 정복했다. 그녀는 강한 성량과 섬세한 프레이징, 무엇보다 감정을 깊이 있게 전달하는 드라마틱한 표현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미국 CBS TV 토크쇼 ' 스몰 월드' 에 출연한 마리아 칼라스
미국 CBS TV 토크쇼 ' 스몰 월드' 에 출연한 마리아 칼라스

 

오페라 《조콘다》의 의미와 난이도

폰키엘리의 《조콘다》는 베르디 스타일의 후기 낭만 오페라로, 이탈리아 오페라 중에서도 특히 격정적인 드라마와 극단적인 감정 변화가 특징이다.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정치적 음모, 사랑, 배신, 희생이 얽히는 이 작품은 리브레토를 보이토(Arrigo Boito)가 썼고 유명한 발레곡 〈춤추는 시간(Dance of the Hours)〉이 포함되어 있다.

 

조콘다 역은 그 안에서도 가장 극적인 여성 캐릭터다. 사랑하는 남자와 그를 위협하는 여자의 관계 속에서 갈등하고, 결국 자신을 희생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이 역할은 목소리의 강도와 표현력 모두를 시험하는 ‘마라톤’과 같은 배역으로, 칼라스는 이 역할을 통해 자신의 테크닉뿐 아니라 내면 연기까지 폭발적으로 드러냈다.

 

한밤의 데뷔가 만든 국제적 반향

이날의 공연은 칼라스를 세계적 스타로 만든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언론은 그녀를 “모든 것을 표현할 줄 아는 목소리”, “강철 같은 고음과 감정을 동시에 지닌 목소리”로 극찬했고, 이듬해부터 라 스칼라(La Scala),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ropolitan Opera), 런던 코벤트 가든(Royal Opera House) 등 유럽과 미국 주요 극장의 초청이 이어졌다.

 

칼라스가 베로나에서 처음 불렀던 《조콘다》는 이후 그녀의 공식 레퍼토리에서는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그 상징성은 여전히 크다. 이는 단순한 데뷔가 아니라, ‘마리아 칼라스'라는 존재를 국제적으로 선언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오페라가 화려한 성량과 음역 중심의 미학을 추구했다면, 마리아 칼라스는 거기에 극적인 몰입과 감정의 진폭을 더했다. 그녀가 연기한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토스카, 노르마 등의 캐릭터는 모두 살아있는 인간으로 느껴졌고, 이는 오페라 무대의 해석 방식 자체를 바꾼 사건이었다.

 

《조콘다》에서 보여준 그녀의 무대 장악력은 바로 이 예술관의 시작점이었다. 강력한 성량만으로 무대를 압도한 것이 아니라, 극 속 인물의 고통과 갈등을 관객이 느끼게 만들었다. 이후 수많은 성악가들이 그녀를 모범으로 삼았지만, ‘칼라스의 조콘다’는 여전히 비교불가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베로나의 밤 이후 시대를 장악한 디바

베로나 공연 이후 칼라스는 약 15년간 전 세계 오페라 무대를 장악하며 황금기를 보냈다. 특히 1950~60년대에는 벨리니(Vincenzo Bellini),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 베르디(Giuseppe Verdi) 등의 벨칸토 오페라 부흥의 중심에 서 있었으며, 오페라가 단지 고전이 아닌 ‘지금 살아 있는 예술’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주었다.

 

그녀의 예술 세계는 때로 격렬했고 파격적이기도 했다. 무대 밖에서도 기자와 갈등, 연애사, 보이콧 논란 등이 이어졌지만,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예술적 재능과 진실성이 그녀의 무기였다. 그녀가 1947년 8월 3일 베로나에서 보여준 《조콘다》의 무대는 아쉽게도 음반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오늘날까지도 마리아 칼라스는 문화 아이콘이자 '디바'를 대표하는 인물로 남아 있다. 

 

1976 Rel. Maria Callas, Ponchielli Opera La Gioconda "Suicidio!"

https://www.youtube.com/watch?v=E5T8vEik_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