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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9일 : 진실한 얼굴의 배우 - 잉그리드 버그만

by plutusmea 2025. 8. 29.

8월 29일은 잉그리드 버그만의 탄생일이자 기일이다. 1915년 8월 29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그는 1982년 8월 29일 영국 런던에서 생을 마감했다. 마이클 커티즈의 ‘카사블랑카’(Casablanca), 히치콕의 ‘오명’(Notorious), 조지 큐커의 ‘가스등’(Gaslight), 아나톨 리트박의 ‘아나스타샤’(Anastasia), 그리고 잉마르 베리만의 ‘가을 소나타’(Autumn Sonata)에 이르기까지 잉그리드 버그만은 한 세기의 영화사에 이름을 남겼다.

 

20세기 영화사에 남은 ‘진실한 얼굴’

잉그리드 버그만의 생애는 순탄치 않아 우여곡절과 파란이 많았다. 갈채와 스캔들, 침체와 열풍이 번갈아 찾아왔다. 그러나 그가 배우로서 남긴 인상은 언제나 '사실을 말하는 얼굴'이었다. 그는 과장된 몸짓을 걷어 내고 호흡과 시선, 말의 속도와 강약을 치밀하게 다듬은 연기로 20세기 영화의 인상 깊은 '표정'을 만들었다. 이 글은 그 변화가 어떤 작품과 맥락에서 형성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정리한다.

 

 

스웨덴에서 할리우드로

잉그리드 버그만은 스웨덴에서 활동하며 구스타프 몰란더 감독의 ‘인터메초’(Intermezzo, 1936)로 스타덤에 올랐다.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쓰던 북유럽 현장에서 버그만의 얼굴은 화장과 조명이 아니라 '빛을 받는 피부' 그 자체였다.

 

데이빗 O. 셀즈닉(David O. Selznick)은 이 인상을 포착해 영어권 리메이크 ‘Intermezzo: A Love Story’(1939)에 캐스팅했다. '억양이 남아 있는 외국인 배우'라는 한계를 고유한 개성으로 바꾸어 내는 방식도 눈에 띄었다.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표정의 진폭을 줄이는 습관은 당시 할리우드가 지녔던 연극적 과장을 상쇄했고 이후 스크린 연기의 미세 조율이 어떤 것인지 선구적으로 보여 주었다.

 

‘카사블랑카’의 신화

‘카사블랑카’(1942)에서 버그만은 전시(戰時)라는 윤리적 압력과 개인적 감정의 충돌을 절제의 전략으로 표현했다. 일사가 릭을 바라볼 때 초점이 살짝 이동하는 순간, 입술을 다물고 깊게 숨을 들이쉬는 미세한 호흡, 대사를 끝까지 말하지 않고 시선으로 마무리하는 선택이 축적되며 캐릭터가 완성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배우의 내면 연기'와 '클로즈업'이 그것을 어떻게 포착하는지 보여 준 이정표다. 버그만의 얼굴만 따라가도 설명 한마디 없이 감정의 흐름이 또렷하게 전해진다.

 

히치콕의 영화 3편

알프레드 히치콕과 함께 만든 ‘스펠바운드(Spellbound, 1945)’, ‘오명’(Notorious, 1946), ‘남회귀선(Under Capricorn, 1949)’은 스릴러 연기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연속 작업이었다.

 

특히 ‘오명’에서 사실주의적 연기는 히치콕의 형식미와 맞물려 기막힌 균형을 이룬다. 애정과 의심을 오가는 알리시아는 말보다 시선과 동선으로 서사를 끌고 간다. 포도주 저장고의 열쇠는 서스펜스의 신호탄이자 여성 주체의 두려움과 용기를 함께 상징하고, 계단 시퀀스는 움직임의 리듬만으로 긴장과 안도를 교차시킨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버그만은 '미모의 스타'라는 호명에서 벗어나 '지성적 배우'라는 평가를 굳혔다.

 

Ingrid Bergman (1940, Wikimedia Commons)
Ingrid Bergman (1940, Wikimedia Commons)

 

오스카 3관왕과 그 이후

‘가스등’(1944년작, 1945년 시상)과 ‘아나스타샤’(1956년작, 1957년 시상)로 두 차례 여우주연상을, ‘오리엔트 특급 살인’(1974년작, 1975년 시상)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아 아카데미 트로피를 총 세 번 수상했다.

 

흥미로운 점은 대중이 즉각 떠올리는 대표작(‘카사블랑카’, ‘오명’)과 수상작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알 수 있는 점은 버그만의 커리어는 이미지가 만든 신화와 치밀하게 다듬은 연기가 나란히 성장한 사례라는 것이다.

 

1947년 브로드웨이 ‘조안 오브 로렌(Joan of Lorraine)’으로 토니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극 무대에서도 정점을 기록했다. 영화·TV·연극을 모두 거친 이력은 스크린 아이콘에 머무르지 않으며 '매체를 가로지르는 배우'라는 위상을 확고히 했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의 유래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현실 인식과 기억, 판단을 지속적으로 흔들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조작을 뜻한다. 핵심은 우연한 실수나 일시적 거짓말이 아니라 의도·반복·권력 비대칭이 결합된 체계적 행위라는 점이다.

기원은 1938년 패트릭 해밀턴의 영국 희곡 『Gas Light』에 있다. 이 작품에서 남편은 집안 가스등의 밝기를 몰래 낮춘 뒤 “아무 변화도 없다”고 부인해, 아내가 자신의 지각을 의심하도록 만든다. 이 설정이 곧 용어의 어원이 되었고, 같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국 영화 〈Gaslight〉(1940)와 할리우드 리메이크 〈Gaslight〉(1944)가 대중적 인지도를 폭발적으로 높였다. 브로드웨이에서는 희곡이 『Angel Street』라는 제목으로도 공연되었다.

언어사적으로 ‘gaslighting’이라는 단어는 20세기 중반부터 심리 조작의 비유로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상담·심리학·저널리즘 영역에서 보편어가 되었고, 오늘날에는 친밀한 관계, 직장, 정치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맥락에서 쓰인다. 국문 표기는 통상 ‘가스라이팅’으로 굳어졌지만, 설명이 필요한 글에서는 '현실 인식 흔들기', '심리적 기만' 같은 풀이말을 함께 제시하면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로셀리니 협업이 불러온 격랑 : 스캔들과 네오리얼리즘 사이

1949년 버그만은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1906-1977)에게 협업을 제안했고 곧 예술적·사적인 파트너가 되었다. ‘스트롬볼리’(Stromboli, 1950), ‘유로파 51’(EUROPA 51, 1952), ‘이탈리아 여행’(Journey To Italy, 1954)으로 이어진 작업은 스타의 얼굴을 네오리얼리즘의 카메라에 노출시키는 위험한 실험이었다.

 

미국에서는 사생활 논란이 거센 도덕적 역풍을 불러와 정치권의 공개 비난과 함께 사실상의 할리우드 추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찍은 영화들(필모그래피, filmography)은 스타의 이미지를 걷어 내고 실제 장소와 자연광을 활용해 '현실에 가까운 얼굴'을 기록했다. 이러한 시도의 의미가 시간이 지나며 인정받았고 그 결과 버그만을 다시 보게 만드는 재평가의 계기가 되었다. 말하자면, 버그만은 스스로의 신화를 해체해 현실의 표정을 스크린에 들이는 길을 택했고 훗날 재평가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귀환과 만년

시간은 결국 버그만의 편이었다. 1956년 ‘아나스타샤’로 할리우드에 복귀했을 때 선택한 길은 “신비로운 공주”의 외양이 아니라, 정체성의 흔들림과 믿음·의심 사이의 떨림을 설득으로 채우는 해석이었다.

 

이후 ‘인디스크리트’(Indiscreet, 1958) 같은 세련된 로맨스 코미디, 잉마르 베리만과 단 한 번 진행한 협업 ‘가을 소나타’(Autumn Sonata, 1978)까지 폭이 넓어졌다. ‘가을 소나타’에서 성공한 피아니스트이자 어머니라는 인물을 연기하며, 말과 침묵의 경계를 밀어붙이는 연기의 정수를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TV 영화 ‘골다라는 여인'(A Woman Called Golda, 1982)에서 골다 메이어를 연기해 에미상을 수상했고, 유방암 투병 끝에 생일인 8월 29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만년에 이르기까지 계속 무대를 지킨 선택은 세간의 평가가 어떻게 바뀌든 배우는 끝까지 연기로 답해야 한다는 믿음을 보여 준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남긴 유산

잉그리드 버그만의 가치는 그의 화려한 수상 목록에 있지 않다. 할리우드의 스타 시스템 정점에 서 있으면서도 유럽 예술영화의 실험으로 발걸음을 넓혔고 논란 속에서도 연기의 기준을 내려놓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카메라가 가까워질수록 몸짓을 줄이고 호흡·시선·발화 타이밍을 정밀하게 다듬어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도 또렷하게 전달했다. 그 결과 '영화는 얼굴의 예술'이라는 오래된 명제가 20세기의 감각으로 정립되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오늘날의 배우에게 “덜하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말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오늘날의 관객에게도 그 '진실한 얼굴'을 통해 사랑과 의심, 용기와 두려움, 화해와 작별의 표정을 선사한다.

 

Intermezzo: A Love Story (1939)

https://www.youtube.com/watch?v=4cwbs3TKS7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