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8월 27일, 프랑스 남부 로크브륀-카프-마르탱(Roquebrune-Cap-Martin)의 카베(Cabbé) 해변. 매일 바다수영을 즐기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물속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인근 묘지에 안치되었고 그가 생전 머물던 ‘카바농’과 롱샹, 유니테 다비타시옹 등은 오늘 우리가 근대 건축의 언어를 읽어내는 좌표가 되었다.
근대건축의 양가성
1965년 여름, 프랑스 남부 로크브륀-카프-마르탱의 카베 해변. 매일 바다수영을 즐기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물속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근대 건축의 어휘를 스스로 만들고 확산시켰던 그가 남긴 질문과 방법은 여전히 도시와 집, 가구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강력한 틀로 작동하고 있다.
그는 낭만적인 장식의 과잉을 걷어내고 구조와 기능의 논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산업화와 대도시화로 주거와 위생 조건이 급격히 악화되던 시기에 그는 건축이 사회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믿음은 새로운 재료(철근콘크리트, 강철, 유리)와 공법을 통해 일관된 형태 언어로 번역되었고 국제주의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보편의 문법은 동시에 “누구의 보편인가?”라는 의문과 비판을 낳았다. 근대건축의 이러한 양가성—해결의 방법인 동시에 획일의 위험—을 함께 읽어내는 일이 오늘 그를 다시 쓰는 출발점이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
르 코르뷔지에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명제를 통해 주거를 감정의 대상이 아니라 성능의 대상, 즉 삶을 지탱하는 장치로 정의했다. 여기서 ‘기계’는 차갑고 비인간적인 물건이 아니라,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의 효율을 내도록 구성된 원리 그 자체를 뜻한다.
창의 높이와 길이, 벽의 두께, 열과 빛의 흐름, 동선의 끊김과 연결을 숫자와 비례로 설명하고,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면서 사람이 요리하고 먹고 씻고 쉬는 살림(생활)의 시간을 설계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이 관점은 건축을 예술이자 공학이자 사회정책이라는 총체적 작업으로 확장시켰다.
근대 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
그가 정식으로 정리한 다섯 가지 원칙은 오늘도 교과서의 첫머리에 놓인다.
1) 필로티(프랑스어 pilotis, 건축물의 기초를 받치는 말뚝이라는 의미로 지상층을 기둥으로 띄워 바닥을 비우는 건축 방법을 의미한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 건축 형태를 제창한 사람이 르 코르뷔지에다), 2) 자유로운 평면(구조와 벽을 분리해 가변성 확보), 3) 자유로운 입면(외벽을 구조에서 떼어내 유연한 표정 만들기), 4) 수평의 띠창(빛과 조망의 연속성), 5) 옥상정원(평지붕을 생활면으로 환원).
이 다섯 가지 원칙은 기술과 생활을 한 문장으로 묶는 간결한 문법이며, 일조·채광·통풍·동선이라는 실용의 문제를 형태의 논리로 환원해 준다. 동시에 평평한 지붕과 긴 창이 모든 환경에서 최선이냐는 반문도 불러왔다. 원칙은 강력하지만, 현장은 늘 예외를 만들어낸다.
빌라 사부아 - 이상과 유지관리의 간극
파리 외곽 푸아시의 빌라 사부아는 다섯 가지 원칙이 거의 교과서적으로 구현된 사례다.
흰색 상자가 기둥 위에 가볍게 떠 있고, 경사로가 이동의 리듬을 만든다. 창은 수평으로 길게 열려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끌어들인다. 옥상은 하늘에 닿는 정원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 이상은 초기에 누수와 결로, 난방 같은 현실적 문제 앞에서 균열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이 주택은 “유지관리와 기술 디테일이 뒷받침될 때 근대의 언어가 온전히 빛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이상과 생활의 간극을 드러내는 한편,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건축가와 사용자의 공동과제임을 일깨운다.
유니테 다비타시옹 - 수직으로 쌓은 일상
마르세유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전후 주택난의 해법으로 제시된 수직적 공동주거의 원형에 가깝다. 단위 주거가 모듈처럼 맞물려 배열되고, 내부 공용층에는 상점·어린이 시설·우편함 같은 생활 요소가 배치된다. 옥상에는 트랙과 유희 공간이 올라가 “지상층을 비운 만큼 지붕을 생활의 장으로 돌려준다”는 원칙이 실험적으로 구현된다.
이 건물은 대형 복합주거의 효시로 칭송받는 동시에, 익명성과 규모의 문제—낯섦이 타자화로 변질될 위험—를 함께 드러냈다. 이후 세계 곳곳의 대단지 주거는 이 장점을 계승하면서도 커뮤니티 관리와 미시적 장소성의 회복을 중요한 과제로 삼게 되었다.
롱샹 예배당 - 빛이 형식이 되는 순간
프랑스 동부의 언덕 위, 롱샹의 노트르담 뒤 모 예배당은 르 코르뷔지에의 또 다른 얼굴이다. 두툼한 지붕과 유기적 벽체, 불규칙하게 뚫린 창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내부에서 점과 면의 성가를 만든다. 초기 ‘상자형’의 직선적 어휘와는 결이 다르다.
여기서 구조는 존재를 과시하지 않고 빛을 위한 그릇이 된다. 전쟁으로 파괴된 옛 성소의 기억 위에 세워졌다는 장소성은 근대의 기술이 영성의 감수성과 조우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건축이 어떻게 침묵과 기도를 공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다.
샹디가르 - 국가 단위의 실험실
인도 독립 이후 새 행정수도를 꿈꾸던 국가 프로젝트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계획가이자 디자이너로 초청되었다. 직조하듯 격자 잡힌 도시 조직 위에 고등법원·비서국·의사당이 축선상에 배치되고, 노출 콘크리트는 장엄한 공공성을 시각화한다.
손바닥 형상의 거대한 조형물은 “받고 주는 도시”라는 상징 언어를 완성한다. 샹디가르는 근대 계획도시가 국가의 이상을 어떻게 건축적 구문으로 번역하는지 보여주는 드문 사례다. 동시에 표준화된 블록이 지역의 기후와 생활습관을 얼마나 충분히 반영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지금도 계속된다.
모듈러 - 사람의 치수에서 출발한 비례학
그는 인간의 치수—서 있을 때의 키, 팔을 뻗었을 때의 높이—를 황금비와 피보나치 수열의 비례로 연결해 ‘모듈러’라는 스케일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사다리는 천장고·손스침 높이·창 턱 높이 같은 결정에 기준점을 제공했고, 전후 대량 건설 환경에서 치수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실무적 이점을 줬다.
그러나 하나의 표준 몸을 보편의 기준으로 삼는 방식은 젠더와 문화, 연령과 장애의 다양성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불러왔다. 모듈러는 설득력 있는 출발점이지만, 오늘의 설계는 그 위에 다수의 몸을 위한 파생 스케일을 더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플랜 보아쟁 - 급진과 반성 사이의 도시
르 코르뷔지에는 파리 중심부를 대규모로 철거하고 고층 타워와 광대한 공원을 도입하려는 급진적 도시계획을 제안했다.
자동차와 광장이 도시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구상은 실현되지 않았으나, 전후 재개발의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 결과는 역시 양가적이다. 효율과 일조, 통풍의 논리가 명료해진 반면, 역사적 결·거리의 우연성·보행의 느린 리듬이 밀려났다.
오늘날에는 이 유산을 반성적으로 계승하며, 고밀과 보행, 기억과 갱신을 동시에 성취하는 균형점을 찾는 중이다.
가구와 생활의 스케일까지 확장된 협업
건축과 도시에서 시작한 그의 비례와 논리는 생활 물건으로 이어졌다.
피에르 자네레, 샤를로트 페리앙과 함께 한 강철 파이프 가구—일명 LC 시리즈—는 앉기·눕기·기대기의 동작을 구조의 논리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튜브의 곡률, 가죽과 천의 장력, 프레임의 접합은 “몸의 선형”을 도면에 옮긴 흔적이다.
이 협업은 개인 천재의 서사로 환원되기보다 팀의 역할과 공정의 분업이 근대 디자인의 본질임을 보여준다. 오늘날 저작권과 크레딧 논의가 페리앙과 자네레의 기여를 재조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연속 유산의 의미
여러 나라에 흩어진 그의 작품 다수가 한데 묶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사실은 중요하다. 이는 단일 건축가의 이름값이 아니라, “근대 건축이라는 새로운 언어”의 탄생과 확산, 그리고 수정의 과정을 하나의 계보로 읽어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주택·공공건물·종교시설·도시계획이 서로 다른 스케일에서 같은 원리를 공유한다는 점은 그가 추구한 표준화와 가변성의 결합이 얼마나 야심찬 프로젝트였는지 웅변한다.
르 코르뷔지에가 남긴 유산
르 코르뷔지에는 집을 기능의 언어로 말하게 했고, 도시는 교통과 공공성의 프레임으로 읽도록 제안했다. 그 언어는 거대하고 명료했다. 동시에, 그 명료함이 때로는 사람과 장소의 섬세함을 압박했다. 그래서 그의 유산을 읽는 가장 건강한 태도는 숭배도 전면 부정도 아니다.
다섯 가지 원칙은 여전히 유효한 설계의 출발선이고, 빌라 사부아의 하자는 유지관리와 디테일의 중요성을, 롱샹의 빛은 기술과 감응의 화해를, 샹디가르는 국가 규모의 실험이 지역성의 번역 없이는 미완에 그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분명하다. 오늘의 기술과 재료,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어떤 생활의 문장으로 엮을 것인가. 그리고 그 문장을 누구의 몸과 목소리에 어떻게 맞출 것인가 하는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