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8월 19일, 워싱턴 D.C. 내셔널 씨어터에서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첫 무대를 올렸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20세기 뉴욕의 이민 사회 갈등으로 재탄생시킨 혁신적 무대였다.
워싱턴에서 열린 첫 무대
1957년 8월 19일, 워싱턴 D.C. 내셔널 씨어터(National Theatre)에서 새로운 뮤지컬이 첫 무대를 올렸다. 이 공연은 정식 브로드웨이 개막에 앞선 ‘아웃 오브 타운 트라이아웃’이었으나, 사실상 대중에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공개한 최초의 무대였다.
이 작품은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이 작곡을 맡고, 아서 로런츠(Arthur Laurents)가 대본을 집필했으며, 제롬 로빈스(Jerome Robbins)가 연출과 안무를 담당했다. 또한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Sondheim)이 작사가로 참여하면서 젊은 에너지가 결합된 창작진의 팀워크가 완성되었다.
당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주류가 낙천적이고 경쾌한 오락성에 치중했다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사회적 갈등과 비극적 서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었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현대적 재해석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배경은 1950년대 뉴욕의 웨스트사이드 빈민가였고, 원작의 가문 간 갈등은 이민자 갱단의 대립으로 변주되었다.
제트(Jets)는 주로 유럽계 이민 2세대 백인 청년들이었고, 샤크스(Sharks)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민자들이었다. 두 집단의 갈등은 당시 미국 사회의 인종 문제와 이민자 차별을 반영한 것이었다.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은 원작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순수했으나, 사회적 현실이 그 사랑을 파괴하는 구조였다.
곡 《America》는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의 희망과 냉혹한 현실을 동시에 드러냈고, 《Gee, Officer Krupke》 같은 곡은 청소년 비행 문제를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이런 방식으로 작품은 오락적 기능을 넘어 사회적 발언을 담아냈다.
번스타인의 음악과 로빈스의 무대 언어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은 클래식 전통에 재즈, 라틴 리듬을 결합했다. 이는 당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흔치 않은 시도였으며, 다양한 음악적 언어가 갈등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Tonight》과 《Somewhere》는 서정적 멜로디로 사랑과 희망을 전했고, 《Cool》에서는 불안과 긴장이 날카롭게 드러났다.
제롬 로빈스의 안무는 무용을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드라마의 일부로 끌어올렸다. 《Prologue》에서 갱단들이 춤으로 대립하는 장면은 발레와 스트리트 파이트를 결합한 듯한 표현으로, 무대 위에서 갈등이 시각적이고 신체적으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뮤지컬 무대에서 무용이 스토리텔링을 이끄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브로드웨이에서의 개막과 평가
워싱턴 공연 이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57년 9월 26일 브로드웨이 윈터 가든 시어터에서 정식 개막했다. 초기 반응은 다양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지나치게 어둡고 폭력적이라고 지적했지만, 또 다른 평론가들은 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이 작품은 732회의 공연을 이어갔고, 이는 당시 기준으로 긴 상연 기록이었다. 상업적 대성공은 아니었으나 예술적 파급력은 확실했다. 이후 런던 웨스트엔드와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며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 역사 속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위상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뮤지컬 역사에서 몇 가지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첫째, 뮤지컬의 주제 영역을 확장했다. 당시까지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사랑, 희극, 오락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인종 갈등, 청소년 폭력, 사회적 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로써 뮤지컬이 단순한 대중 오락을 넘어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예술적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둘째, 음악·안무·드라마의 유기적 결합을 완성했다. 이전 뮤지컬에서는 음악, 춤, 대사가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 세 요소가 하나의 드라마를 구성하는 필수적 요소로 작용했다. 이후 브로드웨이 뮤지컬 제작에서 이 접근은 중요한 전범이 되었다.
셋째, 후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었다. 특히 손드하임이 작사가로 참여한 경험은 그가 이후 《컴퍼니》, 《스위니 토드》 같은 작품을 통해 뮤지컬의 주제와 형식을 확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로빈스의 안무 방식은 현대 댄스 뮤지컬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평론가들과 연구자들에게 현대 뮤지컬의 서막을 알린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영화화와 현대적 재해석
1961년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을 수상하며 원작을 대중적으로 확산시켰다. 뮤지컬 영화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히며, 원작의 예술적 성취를 세계적으로 알린 계기가 되었다.
2021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리메이크는 원작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에 맞는 감각을 더했다. 이를 통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단지 1950년대의 산물이 아니라, 여전히 현대 사회와 대화하는 작품임이 확인되었다.
1957년 8월 19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첫 공연은 뮤지컬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이 작품은 뮤지컬을 단순한 오락에서 예술적·사회적 발언의 장으로 끌어올렸고, 음악과 무용, 드라마의 긴밀한 결합을 통해 장르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오늘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여전히 브로드웨이와 세계 공연계에서 살아 있는 고전으로 남아 있으며, 현대 뮤지컬의 서막을 연 대표작으로 널리 평가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02GtU_VliU&list=OLAK5uy_kBxvW9XK7N1vPxoZMqzTQ-7sSk4UWpDk8&index=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