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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일 : 행위가 곧 예술 - 잭슨 폴록의 사망

by plutusmea 2025. 7. 30.

 

1956년 8월 11일 밤,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의 이스트햄턴 외곽 도로에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은 술에 취한 채 차를 몰고 있다가 나무를 들이받고 숨졌다. 44세의 나이였다.

 

물감은 흘러내리고, 작가는 캔버스를 걷는다

잭슨 폴록은 생전에 이미 미국 미술계의 주목을 받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후, 그가 시도했던 회화의 개념은 단순한 스타일을 넘어, 예술의 철학과 실천을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감은 캔버스에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고’, 작가는 화면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걷는다’. 그는 예술의 주체가 ‘작품’이 아닌 ‘행위’일 수 있음을 선언한 최초의 화가였다.

 

잭슨 폴록 이전까지 대부분의 화가는 캔버스를 세워두고 붓으로 형태를 그렸다. 그러나 그는 바닥에 캔버스를 눕혔고, 그 위를 직접 걷고, 물감을 붓거나 흘렸다. 그는 붓뿐 아니라 나무 막대기, 주방용 국자, 손가락, 심지어 자신의 담배를 도구로 사용했다. 이러한 방식은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의 대표적 흐름이 되었다.

 

그가 1947년부터 집중한 이 기법은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으로 보이지만, 반복과 조율, 화면 구성에 대한 명확한 감각을 바탕으로 했다. 그는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리지만, 무엇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그 에너지를 제어할 수 있는 감각이야말로, 폴록이 예술가로서 지닌 핵심 역량이었다.

 

미국이 처음으로 세계에 내놓은 화가

20세기 전반기 미술의 중심지는 유럽, 특히 파리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미술의 중심은 뉴욕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잭슨 폴록이 있었다. 그의 회화는 미국적인 거칠고 강한 감정, 직선적 표현, 무의식의 시각화를 보여주었다.

 

1949년 8월, 『라이프(Life)』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인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잭슨 폴록을 표지에 실었다. 그 기사는 폴록의 예술성을 평가하기보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동시에 폴록이 미국 미술계의 얼굴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미국은 이제 유럽의 전통을 따라가는 대신, 자신만의 언어로 미술을 만들 수 있는 자리에 와 있었고, 폴록은 그 상징이 되었다.

 

예술은 결국 감각과 경험의 총체

2016년 개봉한 영화 《어카운턴트(The Accountant)》에서는 자폐적 특성을 지닌 주인공 크리스찬 울프가 자신의 침실 천장에 잭슨 폴록의 그림을 붙여두고 매일 밤 그것을 바라본다. 폴록의 작품은 무수한 선과 흔적들이 겹겹이 쌓이며, 그 안에서 어떤 질서도 무질서도 아닌 복잡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 장면은 단순한 미술 취향을 넘어, 폴록의 회화가 ‘읽는 회화’가 아니라 ‘느끼는 구조물’임을 암시한다. 누구든 그 그림을 보며 자신만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예술이란 결국 감각과 경험의 총체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Jackson Pollock

 

죽음 이후 그는 신화가 되었다

1956년 8월 11일, 잭슨 폴록은 음주 운전으로 차량을 몰던 중 도로를 이탈해 나무를 들이받았다. 동승자였던 루스 클리그먼은 살아남았지만, 또 다른 동승자 에디스 메츠거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예술계에 충격을 주었고 이후 그는 미국 현대미술의 ‘고독한 천재’로 신화화되기 시작했다.

 

폴록은 평생 분노와 불안, 알코올 중독과 싸우며 살아갔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그 혼란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 혼란을 시각적으로 조직화하려는 시도였다. 물감이 떨어지고 뿌려지고 휘감기며 화면에 남긴 흔적들은 그가 삶을 어떻게 감각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잭슨 폴록의 작품은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기하학적인 균형과 흐름이 있다. 감정의 폭발처럼 보이는 화면이지만, 관객은 오히려 정적이고 깊은 응시를 하게 된다. 그것은 단지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이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감각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