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년 8월 1일, 미국 뉴욕시에서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이 태어났다. 그는 사후에 미국 문학사에서 심오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모비딕(Moby-Dick)》을 남겼지만, 생전에 그는 실패한 작가로 분류되었다. 동시대 독자와 비평가는 그의 실험적인 문체와 상징 체계를 이해하지 못했고, 평생 가난과 문학적 고립 속에 살아야 했다.
멜빌은 상업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의 연이은 사업 실패와 사망으로 12세 무렵부터 생계를 위한 노동에 내몰렸다. 교사, 은행 사무원, 농장 인부 등 다양한 일을 전전하다가 1839년부터 일반 상선의 선원으로 시작해 1941년 포경선에 승선해 남태평양을 항해했다. 그는 20대에 태평양의 낯선 섬들과 원주민 문화를 직접 경험했고, 이러한 체험은 작품 속 생생한 묘사의 바탕이 되었다.
1846년 첫 소설 《타이피(Typee)》가 출간되었을 때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모험담으로 당대 독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그는 《오무(Omoo)》, 《마디(Mardi)》 등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모험 소설가로 인기를 끌었지만, 문학적으로는 보다 진지하고 심오한 세계를 탐색하고자 했다. 이러한 전환은 《모비딕》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대중에게 환영받지 못한 《모비딕》
《모비딕》은 1851년에 출간되었지만, 멜빌은 이 작품이 대중에게 환영받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다. 소설은 단순한 모험담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그 속은 신학적 사유, 존재론적 질문, 정치적 비판, 심리적 탐구로 가득하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허브는 자신을 불구로 만든 흰 고래 모비딕을 찾아 복수하려고 항해를 떠난다. 그러나 이 여정은 단지 복수를 향한 집착의 기록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는 하나의 비유적 여정이다.
에이허브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 고래는 단지 동물인가, 아니면 나를 시험하는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자연히 인간에게로 향한다. “나는 왜 이토록 집착하는가? 내 의지는 자유로운가, 아니면 필연에 끌려가는가?” 《모비딕》은 이처럼 한 인간이 대상을 향해 복수하고자 할 때, 그 대상이 실제 존재하는 외부의 실체인지, 아니면 자기 내면이 투사된 허상이자 고통의 대리물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여기서 멜빌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묻는다. 인간은 어디까지 알 수 있으며, 그 앎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가? 우리가 보는 세계는 있는 그대로 온전한 세계인가, 아니면 욕망과 두려움으로 뒤틀린 주관적 세계인가? 에이허브의 집착은 결국 자신이 파괴될 운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이 지닌 인식의 한계와 자기 파괴적 욕망을 드러낸다. 결국 그는 고래를 향한 복수심에 자신의 인생과 선원들의 목숨을 걸었고 그 결과는 파멸로 이어진다.
이것은 단순한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한계와 의미, 그리고 운명을 거슬러 가고자 하는 의지를 정면으로 다룬다. 고래는 그 자체로 미지의 실체이자, 인간이 결코 다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상징이다. 인간은 지성을 통해 이 타자를 파악하고자 하지만, 그 모든 시도는 무위에 그치거나 스스로를 향한 상처로 돌아온다. 멜빌은 그것을 통해 인간 지식의 한계와 존재의 근본적 불확실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실패한 작가의 고독한 말년
《모비딕》의 실패 이후 멜빌은 더 이상 주류 문학계의 중심에서 거론되지 않았다. 비평가들은 그를 외면했고 독자들은 흥미를 잃었다. 그는 다시는 큰 출판사와 계약하지 못했고, 생계를 위해 뉴욕 세관에서 일용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 《피에르(Pierre)》는 병든 정신을 다룬 급진적인 실험작이었지만, 또다시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는 말년에 시로 전향했으나, 그의 시 역시 당대에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사망하기 2년 전에는 자비로 시집을 출간했지만, 판매 부수는 25부에 그쳤다. 이 시기의 유일한 위안은 조용한 집필과 가족과의 교류뿐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글을 썼고, 심지어 죽기 직전까지 미완성된 소설 《빌리 버드(Billy Budd)》를 집필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여 년이 지난 후 우연히 발견되어 출간되었고, 현재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늦은 재발견, 그리고 문학적 유산
20세기 초 문학사에서 멜빌의 이름은 거의 지워진 듯했다. 그러나 1920년대를 전후하여 미국 문학 연구자들과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모비딕》은 실존주의와 구조주의, 정신분석학, 신학, 문명비판 등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되며 그 폭발적인 해석 가능성으로 인해 문학적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모비딕》은 단지 소설이 아니라 철학적 텍스트로 읽힌다. 그는 인간이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고자 할 때 얼마나 쉽게 오류에 빠지는지를 날카롭게 통찰했고, 동시에 그런 오류조차도 인간의 본질적인 일부임을 인정했다. 이 점에서 멜빌은 인간 존재의 이중성과 모순을 꿰뚫어본 작가로 평가받는다.
《모비딕》은 인공지능, 기후위기,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담론에서까지 인용되며 여전히 살아 있다. 그가 던진 질문들, 곧 인간의 지식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인간의 욕망은 어디서 멈춰야 하는가, 타자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 허먼 멜빌은 비록 생전에 조명 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그는 단지 고전문학의 작가로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을 가장 깊이 들여다본 증인으로서 전 세계 수많은 독자와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