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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 '음악의 아버지'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사망

by plutusmea 2025. 7. 13.

 

한 시대를 마감한 음악가의 마지막 순간

1750년 7월 28일,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의 죽음은 지역 사회에서조차 큰 파장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날을 바로크 음악의 종언으로 기억한다. 그가 남긴 음악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서양 음악사의 중심축이 되었고, 바흐라는 이름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바흐는 말년에 심각한 건강 악화를 겪었다.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그는 1750년 봄 두 차례에 걸쳐 눈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은 실패로 돌아갔다. 점차 쇠약해진 그는 같은 해 여름 폐렴성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 직전까지도 작곡은 계속되었고, 특히 《푸가의 기법》은 미완이지만 음악사상 가장 심오한 대위법 연구로 평가받는다. 그가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있던 것은 권력도 명예도 아닌 오선지였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

바흐는 자신의 생애 동안 다양한 직책을 거쳤다. 바이마르 궁정 오르가니스트, 쾨텐 궁정악장, 그리고 라이프치히 성토마스 교회의 칸토르에 이르기까지 그는 언제나 교육자와 실무자, 연주자와 작곡가라는 다중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특히 라이프치히에서의 마지막 27년간은 매주 칸타타를 새롭게 작곡하고 연주하는 강도 높은 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마태 수난곡》, 《요한 수난곡》, 《B단조 미사》 등은 모두 종교음악의 최고봉으로 손꼽힌다.

 

그가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적 총합을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그는 오르간, 하프시코드,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를 위한 작품을 남겼고, 협주곡과 푸가, 칸타타, 코랄, 모테트 등 모든 형식을 넘나들며 작곡했다. 둘째는 그의 음악이 후대 작곡가들에게 교본처럼 작용했다는 점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바흐를 통해 대위법의 정수를 배웠고, 쇼팽과 브람스도 바흐의 구조적 언어를 응용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발전시켰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초성화(1748)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초성화(1748)

 

신앙에서 울려 나온 음악

바흐는 평생을 루터교 신앙에 따라 살았고, 그의 음악은 깊은 종교적 헌신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자신의 악보 끝에 자주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라는 문구를 남겼다. 이는 그에게 음악이 단순한 예술이나 오락이 아니라, 신에 대한 기도이자 경배였음을 보여준다. 《마태 수난곡》은 그 신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이 곡은 성경 마태복음의 수난 장면을 음악으로 옮긴 작품으로, 합창과 독창, 관현악이 복잡하게 교차하면서 인간의 고통과 구원을 극적으로 풀어낸다. 청중은 이 곡을 들으며 단순한 음악 감상을 넘어서 하나의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바흐에게 있어 작곡이란 자신이 받은 재능으로 신을 찬미하는 방법이었다.

 

바흐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린 바로크 시대

음악사에서 바로크 시대는 1600년대 초반부터 1750년까지로 구분되며, 바로 바흐의 사망을 끝점으로 삼는다. 물론 음악 양식은 점진적으로 변화하지만, 바흐는 바로크적 이상, 즉 복잡한 구조와 대위법적 미학, 종교성과 상징성을 가장 정교하고 완벽하게 구현한 인물이었다. 그의 작품은 ‘형식의 극대화’였지만, 동시에 그 형식을 통해 감정과 인간성을 표현했다. 이는 이후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선호한 ‘명료하고 균형 잡힌 양식’과 대비된다. 그렇게 바흐의 죽음은 복잡성과 영성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고전적 명료성과 이성의 시대가 막을 올리는 역사적 분기점이었다.

 

멈추지 않은 영향력의 흐름

놀랍게도 바흐의 위대한 작품 대부분은 사망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대중의 관심 밖에 놓여 있었다. 그의 이름은 종교계나 일부 오르간 연주자 사이에서만 간헐적으로 언급되었을 뿐, 음악사 전체에서는 한동안 지워져 있었다. 그러다 1829년, 낭만주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이 베를린에서 《마태 수난곡》을 재연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이 공연은 바흐의 음악을 전 유럽에 다시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바흐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렸다. 그 이후 바흐는 음악 교육에서 필수적인 작곡가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현대 음악이 직면한 새로운 실험적 시도들 속에서도 그의 구조적 언어는 여전히 참조된다.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같은 현대 작곡가들조차 바흐의 건축적 음악 구조에서 영감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바흐의 음악

21세기의 청중에게 바흐는 고전이자 혁신이다. 그의 음악은 오늘날에도 명상음악이나 태교 음악으로도 활용되고 있으며, 뇌 과학 연구에서는 바흐의 음악이 인지력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도 발표되었다. '피아노곡의 구약성서'라 불리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단순한 연습곡을 넘어, 복잡한 감정의 변화와 구조적 섬세함을 담고 있어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평생 탐구하는 레퍼토리로 삼고 있다. 또한 AI 기반 음악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바흐의 대위법적 구조가 기술적으로 분석되고 재현되는 실험도 활발하다. 그의 음악은 과거를 대표하면서도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이다.

 

1750년 7월 28일, 바흐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그 순간부터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울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바로크 시대를 마무리한 작곡가가 아닌, 모든 시대의 음악적 영감을 공급하는 근원으로서 그는 오늘날까지도 영향력을 이어가고 있다. 죽음은 정지이지만, 바흐에게 그것은 멈춤이 아니라 영원한 울림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생을 기억할 때마다 그가 남긴 ‘소리의 성서’를 통해 우리 삶의 본질을 다시 묻게 된다.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였고, 지금도 그 울림은 세상을 감싸고 있다.

 

임현정 피아니스트, Pianist HJ Lim, Prelude and Fugue No.2, BWV 847 J. S. Bach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https://youtu.be/5dlFn-p6lKI?si=ItdNQOESbbdn4sp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