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의 새로운 표준이 된 남자
1915년 7월 27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마리오 델 모나코(Mario Del Monaco). 이 이름은 훗날 오페라 무대에서 ‘불꽃 같은 목소리’의 상징으로 기억되며, 20세기 드라마틱 테너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육중했으며, 무대를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세계 오페라 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델 모나코는 오페라 무대를 낭만적 환상 속 공간이 아니라, 감정과 폭발력이 충돌하는 전장의 한가운데로 바꾸어 놓았다. 그가 무대에 서는 순간, 관객은 감미로운 선율보다도 거대한 감정의 힘에 먼저 압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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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와 푸치니를 휘감은 강철의 성대
마리오 델 모나코는 본래 바이올린을 전공하다가 스무 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특별한 유연함보다 육중한 밀도로 주목받았으며, 로시니나 도니제티보다도 베르디(Giuseppe Verdi)와 푸치니(Giacomo Puccini)의 작품들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그의 대표작은 《아이다》의 라다메스, 《일 트로바토레》의 만리코,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텔로》의 오텔로였다. 《오텔로》는 테너에게 있어서 가장 극한의 요구를 쏟아내는 배역 중 하나다. 질투와 광기, 사랑과 파멸이 뒤섞인 오텔로의 감정은 보통의 성악으로는 담아낼 수 없다. 델 모나코는 이 역할을 통해 인간의 가장 격렬한 내면을 마치 육체의 진동처럼 목소리에 담아냈다. 그의 오텔로는 격정적이고 위태로우며, 동시에 품격을 잃지 않았다. 단순히 ‘강한’ 것이 아니라 ‘무너질 듯 흔들리는 강함’이 델 모나코 오텔로의 본질이었다.
‘드라마틱’이라는 형용사를 체현한 존재
마리오 델 모나코는 테너 가운데 희귀한 '드라마틱 테너(Dramatic Tenor)'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음 하나하나를 단호하게 조각했고 고음에서도 밀도 높은 울림을 유지했다. 그의 노래는 파열 직전의 에너지로 채워져 있었으며, 심리적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그의 공연을 본 이들은 그를 가리켜 ‘성악가가 아니라 무대 위의 용사’라고 표현했다. 그는 무대 연기를 통해서도 관객을 사로잡았다. 목소리뿐 아니라 눈빛과 제스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극적인 몰입을 이끌어냈다. 델 모나코는 극장을 단순한 음향의 공간이 아니라, 감정이 직조되는 살아 있는 장면으로 만들었다. 특히 그는 연기와 노래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감정으로 통합시켰다.
무대 밖의 엄격함과 예술에 대한 고집
델 모나코는 예술 앞에서 누구보다 엄격한 태도를 유지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혹독한 연습으로 유명했으며, 수많은 고통과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발성의 일관성과 무대 집중력을 꾸준히 지켜냈다. 그의 목소리는 ‘천부적’이라기보다는 ‘투쟁적’이었다. 실제로 그는 교통사고로 인한 중대한 부상 이후에도 무대 복귀를 강행했고, 한 음 한 음을 이전보다 더욱 강렬하게 쏟아내기 위해 자신의 신체 상태를 세심하게 관리했다. 그는 화려한 삶보다 조용하고 절제된 생활을 선호했다. 목소리를 보호하기 위해 수면과 식단은 물론, 인간관계까지 조정하며 오로지 ‘목소리 중심의 인생’을 살았다. 그의 발성은 높은 음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었고, 저음의 깊이와 중음의 무게, 고음의 밀도를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테너로 평가받는다.
세기의 디바와 나란히
델 모나코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세기의 디바(Diva)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와 함께 수많은 무대를 장식했다. 그들의 《토스카》는 지금도 ‘가장 격정적인 무대 녹음’으로 손꼽히며, 델 모나코의 ‘Vittoria! Vittoria!’ 장면은 한 번 들은 이들이 평생 잊지 못할 울림을 남긴다. 그밖에 그는 전설적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Tullio Serafin),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등과도 협업했으며, RCA와 데카 레이블을 통해 수많은 명반을 남겼다. 이러한 녹음들은 오늘날에도 클래식 팬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며, 델 모나코라는 인물을 새롭게 되새기게 한다.
불멸의 테너로 남다
마리오 델 모나코는 1982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예술은 LP와 CD, 디지털 스트리밍을 통해 오늘날에도 생생히 되살아나고 있다. 기술적으로 완성된 테너는 시대마다 등장하지만, 무대 전체를 장악하는 ‘존재로서의 울림’을 지닌 인물은 흔치 않다. 델 모나코는 그런 예외적인 존재였다. 그가 선 무대는 늘 압도적이었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청중은 당분간 숨을 고르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지닌 힘이었다. 1915년 7월 27일,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삶은 오페라 역사에 굵은 음표 하나를 남겼다. 무대 위에서 그는 감정을 울리는 전사였고, 목소리를 통해 세계를 진동시킨 남자였다.
《황금 트럼펫(La tromba d’oro)이라는 별명의 유래와 의미》
마리오 델 모나코는 생전에 ‘황금 트럼펫(La tromba d’oro)’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불렸다. 이 별칭은 그의 목소리가 가진 독특한 성향과 예술적 스타일을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무엇보다 그의 성량은 엄청난 투사력과 금속성의 울림을 지녔으며, 고음에서는 마치 트럼펫처럼 반짝이며 돌진하는 인상을 남겼다. 음색은 단단하고 곧았으며, 관현악을 뚫고도 선명하게 떠오를 만큼의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델 모나코는 전통적인 벨칸토(Bel Canto) 계열의 유려하고 우아한 선율보다는, 보다 구조적이고 강한 밀도의 발성법인 멜로끼(Melocchi) 창법을 구사했다. 이 창법은 성량과 공명, 드라마적 긴장감에 초점을 맞추며, 특히 드라마틱 테너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평가된다. 그의 발성은 위턱과 두개골 중심의 공명을 중시했고, 전방으로 던지는 듯한 투창형 발성이 특징이었다. 그 결과, 그의 노래는 우아함보다는 격정과 폭발의 미학을 강조하게 되었다. 무대 위에서의 연기력과 몸짓, 표정 하나하나도 목소리의 힘과 결합되었고, 이러한 극적 에너지의 총체가 ‘황금 트럼펫’이라는 표현으로 응축된 것이다. 1950년대 뉴욕 타임즈는 그의 공연에 대해 “델 모나코는 노래가 아니라 금관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다. 그것도 황금 트럼펫을.”이라고 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가 얼마나 특이한 음색과 강한 발성법으로 무대를 지배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후 ‘황금 트럼펫’이라는 별명은 그의 상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