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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 “예술은 어디에서 오는가?” - 카를 융의 탄생

by plutusmea 2025. 7. 11.

 

예술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질문에 인류는 오랫동안 신의 영감, 천재성, 기술, 시대정신이라는 다양한 대답을 내놓아왔다. 그러나 20세기 초, 한 사상가는 인간 내면에서 그 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예술을 감정의 표출이나 기술적 성취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은 인간 정신의 심연, 곧 무의식이 의식 세계로 전해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 사상가의 이름은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년 7월 26일 스위스 케슬(Kesswil)에서 태어난 그는 심리학이라는 지도를 들고 인간 정신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개척자였다.

 

예술, 무의식의 언어로 다시 읽다

융은 인간의 마음속에 ‘개인적 무의식’을 넘어선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는 특정 개인의 경험이 아닌, 인류 전체가 유전적으로 공유하는 심층적 기억의 층위이다. 이 무의식 속에는 아르케타입(archetype)이라 불리는 상징적 원형들이 자리하며, 예술가는 바로 이곳에서 상징들을 끌어올리는 사람이라 보았다. 그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단순한 창작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의식하지 못한 채 무의식으로부터 받아낸 메시지이며, 집단 무의식의 물결이 개별 인간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는 과정이다. 예술은 곧 무의식의 상징적 표현이고, 예술가는 그 흐름을 중계하는 도관(medium, 매개자 또는 전달자)인 것이다.

 

1935년 경의 칼 융(1875-1961)
1935년 경의 칼 융(1875-1961)

 

융 심리학으로 읽는 문학과 회화

융의 이론은 예술작품 해석의 지형도를 바꾸었다. 이전까지 예술 평론은 주로 작가의 생애나 시대적 배경에 집중했지만, 융 이후에는 작품에 담긴 상징과 무의식의 구조가 분석의 핵심이 되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거대한 벌레는 억압된 자아의 상징으로, 고흐의 나무와 태양은 자아의 통합을 향한 갈망으로 해석된다. 샤갈의 부유하는 연인, 클림트의 황금빛 공간, 달리의 녹아내리는 시계도 모두 융 심리학의 프리즘을 통과하면 무의식의 표상으로 재조명된다. 예술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되는 것, 그 해석은 상징에 대한 이해로부터 비롯된다.

 

상징, 예술, 그리고 인간 정신

융은 꿈을 단순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무의식이 상징을 통해 자신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라 보았다. 그리고 이 상징들은 예술작품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예술가는 꿈을 꾸듯이 창작하며, 관람자는 그 꿈을 해석하며 작품과 교감한다. 이 상징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원형적 이미지일 수도 있고, 특정 시대의 무의식이 반영된 독창적 표상일 수도 있다. 초현실주의 미술, 상징주의 문학, 추상회화 등은 모두 융적 해석에 의해 풍부한 층위를 갖게 되었다. 예술은 무의식을 번역한 언어이며, 상징은 그 언어의 알파벳이다.

 

융과 음악 : 무의식의 진동을 듣는 예술

융은 음악을 단순히 즐기는 감각적 예술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음악이야말로 언어 이전의 감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예술이며, 무의식과 가장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음악은 꿈과 비슷하게 상징적이며, 자아와 무의식 간의 다리로 작용한다. 현대 음악가들도 융 심리학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BTS의 《MAP OF THE SOUL》 프로젝트이다. 이들은 융의 개념인 페르소나(persona), 그림자(shadow), 자기(self)를 주제로 한 앨범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대중음악 속에 융 심리학의 언어를 녹여냈다. 〈Intro: Persona〉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Shadow〉에서는 그림자와의 대면을 통해 자아의 갈등을 표현한다. 〈Ego〉에서는 자기 수용과 통합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처럼 음악은 융이 말한 무의식의 여정을 따라가는 내면의 항해로 구성되었으며, 음악을 통한 집단 무의식의 해석과 표현이라는 융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사례가 되었다.

 

융이 바라본 예술가

융은 예술가를 단지 괴짜나 천재로 보지 않았다. 그는 예술가를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의 흐름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라 말하며, 이들이 자신의 의식을 넘는 더 큰 힘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말한다. 예술가는 때로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무의식은 시대와 인류의 심층적 정서에 접속되어 있기에, 그의 작품은 동시대인에게 울림을 준다. 그것은 개인을 넘어선 전체성, 곧 자기(Self)를 향한 여정의 일부이며, 예술은 그러한 치유와 통합의 공간이기도 하다.

 

예술의 심연을 비춘 인간 내면의 탐험가

융의 이론은 단지 이론에 머물지 않았다. 현대에는 예술치료, 문학치료, 상징해석 미술교육, 드림워크(dream work, 꿈을 해석하거나 활용하는 작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적으로 응용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아트, AI 창작, 가상현실 기반 예술이 활발해진 지금, 융의 ‘무의식과 상징의 이론’은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다. 융의 사상은 예술을 바라보는 틀을 넓혀준다. 단지 기교나 주제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말하는 상징이 어디에서 왔으며, 그것이 인간 정신에 어떤 반향을 주는가를 묻게 만든다.

 

융은 악보를 쓰지도, 캔버스를 채우지도 않았지만, 수많은 예술가가 자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 지도 제작자였다. 그는 예술가가 아니었지만, 인간의 무의식을 탐험하며 예술의 심연을 비추었던 사람이다. 1875년 7월 26일, 한 명의 정신과 의사가 태어났고 그는 예술가에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무의식과 예술의 비밀을 밝혀낸 사람, 인간 정신의 탐험가 카를 융, 오늘 다시 그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