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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 : 인조인간을 꿈꾼 시인 - 빌리에 드 릴아당의 사망

by plutusmea 2025. 7. 10.

 

19세기 말의 시인이 남긴 ‘AI 여성’의 원형

1894년 7월 25일, 프랑스의 한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오귀스트 빌리에 드 릴아당(Auguste Villiers de l’Isle-Adam). 당시 프랑스 문단에서는 상징주의 운동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고, 보들레르(Baudelaire), 말라르메(Mallarmé), 베를렌(Verlaine) 같은 시인들이 우아한 상징과 모호한 감성을 무기로 문학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빌리에 드 릴아당은 한편으로는 ‘시적 몽상가’로, 또 한편으로는 ‘기이한 예언자’로 간주되었다.

 

그의 대표작 《미래의 이브(L’Ève future)》는 1886년 발표된 소설로, 이 작품은 놀랍게도 ‘안드로이드 여성’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문학으로 평가받는다. 단순히 기계 장치로서의 인형을 상상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반영하여 만든 이상적인 여성 기계를 철학적으로 탐색한 작품이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AI 휴머노이드, 디지털 휴먼, 감정형 인조인간의 서사적 원형에 가장 가까운 선조인 셈이다.

 

완벽한 인간 여성은 없다, 그러니 만들자

《미래의 이브》는 실존 인물인 영국의 발명가 에디슨(Thomas Edison)을 가상화한 등장인물로 설정한다. 이 ‘에디슨’은 친구의 절망적인 사랑 이야기를 듣는다. 친구는 아름답지만 속물적인 여성 알리시아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의 내면적 공허함 때문에 깊은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에 에디슨은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를 만들어주지.” 그렇게 그는 알리시아의 외모를 본뜬 ‘완벽한 내면을 지닌 안드로이드 여성’, 즉 안드레이드 하다리(Andréide Hadaly)를 제작하게 된다.

 

이 안드로이드는 단지 사람처럼 움직이고 말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녀는 인간의 감정, 예술 감성, 윤리적 판단에 대해 학습된 지능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특히 그녀는 인간 여성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결함을 초월한 존재로 묘사된다. 19세기 말, 증기기관과 초기 전기 기술의 시대에 이런 사고 실험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한 공상 과학이 아니라 철학적 예언이라 부를 만하다.

 

사이버 휴머니즘의 선구자

《미래의 이브》는 출간 당시에도 논쟁적이었다. 당시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는 기술이 인간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 혹은 오히려 인간성을 파괴할지에 대한 고민이 활발했다. 빌리에 드 릴아당은 이 작품을 통해 물었다. “진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감정인가, 존재인가, 아니면 환영인가?”

 

오늘날 이 질문은 생성형 인공지능, 디지털 휴먼, 감정 AI라는 이름으로 다시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미래의 이브》는 이러한 논의에서 잊혀선 안 될 출발점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욕망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감정과 정체성,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탐색하려 했다. 그는 명확히 말한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를 원하지만, 스스로는 결코 완전해질 수 없기에, 기술을 통해 그 완전을 ‘복제’하려는 욕망을 품는다.

 

오귀스트 드 빌리에 드 릴아당(1838-1889)
오귀스트 드 빌리에 드 릴아당(1838-1889)

 

오늘날 읽는 19세기 SF의 매혹

오늘날 우리는 《엑스 마키나(Ex Machina)》, 《HER》,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같은 영화들을 통해 인조 인간과 감정, 자율성, 인간관계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서사의 핵심 골격은 《미래의 이브》 속 안드레이드 하다리에서 이미 시도된 바 있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이 인간이 아님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행동과 윤리 의식을 드러내는 장면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빌리에 드 릴아당이 놀라운 점은, 그가 기계로 만든 인간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그것을 한 남자의 구원으로 설정했고, 동시에 그것이 진정한 구원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중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질문하게 한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계에 투영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기계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가?

 

AI 시대에 되살아나는 목소리

오귀스트 빌리에 드 릴아당은 말년에 가난과 질병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시인으로서도, 극작가로서도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그의 작품들은 종종 괴벽스럽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외면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문학을 통해 시도한 상상력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기술 윤리, 인간 정체성, 디지털 존재론의 문제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그는 “인류가 기술로 신을 대신하려 할 때, 진짜로 만들어내는 것은 신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욕망은 어떤 사랑보다도 정교하고, 어떤 진실보다도 위태롭다고 경고한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과 인공지능, 감성과 연산, 존재와 외형의 경계에 대해 다시 질문할 때, 빌리에 드 릴아당의 음성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그것은 질문하는 시인의 목소리이자,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상상한 사람의 잔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