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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 아이와 예술을 잇다 - 알렉산더 칼더의 탄생

by plutusmea 2025. 7. 9.

 

예술가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 칼더

1898년 7월 2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로턴(Lawton)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훗날 ‘움직이는 조각’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이 혁신적인 예술가는 예술가 가문에서 자라났다. 그의 아버지 알렉산더 스털링 칼더(Alexander Stirling Calder)는 공공 조각가였고 어머니는 초상화 화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흙, 철사, 나무 조각 등 주변 사물들을 만지작거리며 조형 감각을 키워나갔다.

 

칼더는 기술과 예술 모두에 관심이 많았고 일찍이 공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손끝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욕망은 그를 미술로 이끌었다. 파리에서 본 미로, 몬드리안, 아르프 등의 예술은 그의 감각을 자극했고, 특히 어린아이처럼 자유롭고 유희적인 형식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아이들의 친구가 된 예술가, 아동을 향한 칼더의 애정

칼더는 단지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자신의 세계관 안에서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존재로 바라보았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두 딸, 산드라(Sandra)와 메리(Mary)를 끔찍이 아꼈으며, 그들의 놀이에서 예술적 영감을 자주 얻었다. 딸들을 위해 만든 나무 장난감, 움직이는 동물 조각, 색색의 모빌 등은 그가 가정 내에서도 아동을 위해 적극적으로 창작 활동을 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아동들이 예술을 통해 자유롭게 상상하고, 세상을 놀이처럼 경험하길 바랐다. 그리하여 자신의 작업실을 어린이들에게 항상 열어두었고, 어린 관객이 그의 작품을 자유롭게 만지고 반응할 수 있도록 특별한 전시 방식을 고안했다. “어린이들이 웃으며 다가오지 않는다면, 내 작품은 실패한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했는지를 보여준다.

 

모빌(Mobile), 아이들을 위한 움직이는 시

칼더의 대표작인 모빌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다. 공기 흐름에 따라 천천히 회전하고 떨리는 이 조형물은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식된다. 칼더는 이러한 움직임이 “하늘의 별처럼 유동적인 우주를 닮았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모빌 작품 중 상당수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나 아동 병동 등에 설치되었다는 것이다. 칼더는 아이들이 작품과 놀이처럼 상호작용하길 바랐다. 실제로 그의 초기 모빌 중 일부는 자신의 조카나 어린이 관람객들을 위해 만든 것이며, 전시보다는 체험과 참여에 중점을 두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자장가》(La Lune en Rodage)는 병원 천장에 설치되어 아기들이 침대에 누워 바라보도록 고안되었다. 그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계를 바라보며, 그들에게 위로와 상상력을 줄 수 있는 조형 언어를 끊임없이 탐구했다. 뉴욕 마운트 시나이 병원과 보스턴 어린이 병원에는 지금도 그의 작품이 아이들과 가족을 위한 시각적 치유의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칼더의 대형 모빌
칼더의 대형 모빌

 

아이처럼 창조하라: 칼더의 유쾌한 실험정신

칼더는 늘 아이와 같은 호기심과 유머 감각을 지닌 예술가였다. 그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듯 정형화되지 않은 유기적 선과 색을 자유롭게 사용했다. 이로 인해 그의 작업은 종종 ‘유치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칼더는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아이처럼 만들 수 없다면, 당신은 예술가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어린 시절의 상상력과 창조성을 예술의 본질로 보았다. 실제로 그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The Museum of Modern Art)에서 열린 어린이 대상 전시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어린이들이 그의 작품을 만지고, 흔들고, 그 안에서 놀도록 했다.

 

철사 인형극과 미니 서커스 : 어린이를 위한 예술 공연

1930년대 칼더는 철사로 만든 인형들로 서커스 공연을 펼쳤다. 《칼더의 서커스(Calder’s Circus)》는 그가 직접 만든 말, 사자, 곡예사, 코끼리 등의 조형물이 실제 서커스처럼 움직이며 이야기를 구성하는 미니어처 공연이었다. 그는 이 인형극을 통해 예술과 유희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으며 많은 어린이와 가족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서커스 공연은 단순한 유흥이 아니었다. 그는 이를 직접 연기하고 해설했으며, 아이들이 인형의 움직임과 리듬에 반응하도록 세심하게 설계했다. 이것은 어린이들이 처음으로 접하는 공연 예술이 되기도 했고, 일부는 칼더의 공연을 계기로 예술가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모빌을 넘어, 도시를 위한 놀이터까지

칼더는 단지 미술관에 전시될 작품만을 만든 것이 아니라, 도시를 예술로 채우고자 했다. 그 중 놀이 공간과 관련된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그의 대형 조각들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람들이 오가고 머무르며 감각을 확장할 수 있는 놀이터처럼 기능했다.

 

시카고, 파리, 뉴욕 등 전 세계에 설치된 그의 야외 조각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도시의 풍경을 변화시키며, 예술을 일상의 일부로 스며들게 했다. 그는 구조물에 색과 생동감을 부여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탐색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가 만든 공공 조형물 일부는 실제로 지역 학교나 놀이터 근처에 배치되어 아이들의 창조적 기억의 일부가 되었다.

 

알렉산더 칼더가 대표작 ‘Gamma’ 모빌과 함께 작업 중인 모습(1947년)
알렉산더 칼더가 대표작 ‘Gamma’ 모빌과 함께 작업 중인 모습(1947년)

 

 

칼더의 예술이 현대 아동 미술 교육에 남긴 유산

알렉산더 칼더의 예술 세계는 단순한 조형 기법이나 조각 형식의 혁신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 중 하나는 ‘아이들이 예술을 만드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미술 교육자들은 칼더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아, 아동이 능동적으로 조형 과정을 체험하고 상상력을 해방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바꾸기 시작했다.

 

칼더가 도입한 모빌은 대표적인 예이다. 현재 수많은 어린이 미술 교육 기관에서는 칼더의 방식에서 착안하여, 종이, 철사, 나무, 천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움직이는 입체 조형물을 직접 만들어보는 수업을 운영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단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고, 공간과 시간 속에서 물체의 움직임을 탐구하는 창조적 설계자가 된다.

 

또한 칼더의 예술은 예술을 결과물이 아닌 과정 중심으로 바라보는 교육 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아동 미술 교육에서 ‘틀림없는 정답’을 요구하기보다는, 실수와 실험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고, 감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격려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었다.

 

오늘날에도 칼더 재단(Calder Foundation)은 세계 여러 도시에서 어린이를 위한 모빌 워크숍, 철사 조형 만들기, 인형극 체험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의 정신을 계승한 예술가와 교육자들이 새로운 세대를 위한 창조적 미술 교육을 이끌고 있다. 그의 작품은 교과서 안의 도판이 아니라, 손으로 만지고, 움직이며, 놀이를 통해 느끼는 살아 있는 예술 체험의 모델로 지금도 수많은 아이들의 창조적 기억에 남아 있다.

 

칼더, 아이의 시선으로 예술을 해방하다

알렉산더 칼더는 “움직임”과 “유희”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예술가다. 그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관찰하고, 그들에게 예술이란 두려움 없는 놀이이자 자유로운 창조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병원, 유치원, 공공 미술관 등에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고 있다. 1898년 7월 22일에 태어난 이 예술가는, 단지 조각의 형태를 바꾼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이란 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일임을 온몸으로 증명한 인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