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넘은 오페라, 바그너의 최후작
1882년 7월 19일, 독일 바이에른주의 도시 바이로이트. 이곳에서 열린 공연은 단순한 오페라 초연이 아니었다.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는 자신의 예술 인생을 총결산하는 마지막 작품 《파르지팔》(Parsifal)을 세상에 선보였다.
이 오페라는 아서 왕 전설을 모티프로 삼아 인간의 구원, 동정심, 고통의 정화를 주제로 삼는다. 신화적 서사에 음악과 철학을 결합한 《파르지팔》은 바그너가 창조한 예술적 이상, 즉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의 궁극적인 형태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한 편의 오페라라기보다는 하나의 사상적 유산이자, 종교적 체험에 가까운 무대 예술로 평가된다. 바그너가 추구한 예술과 인생의 결합이 그 속에 담겨 있다.
바이로이트를 위한 성스러운 의식
《파르지팔》은 바그너의 다른 오페라들과 달리 ‘무대축전용 성무극(Bühnenweihfestspiel)’이라는 독특한 장르명으로 명명되었다. 이는 단지 오페라가 아닌, 경건한 의례와도 같은 공연이라는 뜻이다. 바그너는 이 작품이 오직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만 상연되기를 원했으며, 실제로 그의 유언에 따라 30년간 이 원칙은 지켜졌다. 공연장은 단순한 극장이 아니라, 일종의 예술 사원이자 성소로 간주되었으며, 관객은 단지 예술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닌, 예식을 함께 체험하는 신도의 위치에 놓였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바그너가 예술을 통해 영적 경험을 전달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음악을 단순한 오락이 아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사유의 통로로 이해했다. 특히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내부 구조는 관객이 연극이나 오페라를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무대와 함께 ‘몰입하는’ 존재로 기능하게 만들었다. 이는 현대적 몰입형 공연 공간의 전신이라고도 평가된다.
바이로이트(Bayreuth)
바이로이트는 독일 바이에른주 북부에 위치한 인구 약 7만 명 규모의 중소 도시로, 리하르트 바그너의 이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예술의 중심지이다. 바그너는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구현할 장소를 찾던 중, 기존의 오페라 하우스들과는 전혀 다른 무대 구조와 음향 조건을 실현할 수 있는 도시로 이곳을 선택했다. 1876년 그는 이곳에 직접 설계한 전용 공연장인 바이로이트 축제극장(Bayreuther Festspielhaus)을 완공하고, 자신의 음악극만을 상연하는 특별한 축제를 창설했다. 이 축제는 오늘날까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로 이어지며, 매년 여름 전 세계의 바그너 애호가들을 끌어모은다. 특히 《파르지팔》은 바그너가 “이 극장에서만 공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작품으로, 이 도시와 작품 사이에는 신성에 가까운 연결이 형성되어 있다. 바이로이트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바그너 예술 세계의 정신적 무대라 할 수 있다.
구원과 동정, 그리고 인간의 조건
《파르지팔》의 주인공은 성배의 기사단을 구원할 운명을 지닌 ‘순진한 바보’다. 그는 무지와 미성숙에서 출발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고 동정심을 품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깨달음에 도달한다. 이 작품은 영웅 서사라기보다는, 내면의 성장을 그리는 ‘정신적 순례기’에 가깝다. 파르지팔이 겪는 고뇌와 고통은 단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서, 인간 존재가 지닌 근본적인 고독과 죄의식을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바그너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동정(Mitleid)’이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감정이야말로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유일한 통로라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종교적 윤리와도 맞닿아 있으며, 파르지팔이 고통의 총체를 통과하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은 불교적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해석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 바그너는 생애 말년에 동양철학, 특히 쇼펜하우어(Schopenhauer)를 통해 접한 불교 사상에 관심을 가졌고, 《파르지팔》에는 그러한 영향을 받은 흔적도 발견된다.
정지된 시간과 무한한 반복의 음악
《파르지팔》의 음악은 다른 바그너 작품들보다도 더 느리고, 더 명상적이다. 전통적인 오페라에서는 전개와 갈등이 중심이 되지만, 《파르지팔》에서는 ‘정지된 시간’이 관객을 감싸고 지배한다. 라이토모티프(Leitmotiv, 동기)의 반복은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극 전체를 에워싸는 일종의 영적 진동처럼 기능한다. 청자는 음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음악 속에 머물게 된다.
제1막에서 성배가 등장하는 장면, 제3막에서 파르지팔이 성배를 들어 올리는 장면은 마치 시간과 공간이 멈춘 듯한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음악은 서사보다 앞서고, 감정보다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 정체와 반복, 정적과 응시는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한 극점이라 할 만하다. 바그너는 청중이 음악의 흐름에 따라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그 정지 속에서 명상하고 내면을 응시하길 바랐다. 이러한 특성은 후에 드뷔시(Debussy)나 메시앙(Messiaen)과 같은 작곡가에게 큰 영향을 주며, 서사 중심의 음악극에서 시간 그 자체를 주제로 삼는 음악으로 진화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예술과 이념, 그리고 논쟁의 불꽃
바그너는 생전에 반유대주의적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그의 일부 사상은 이후 나치 이데올로기와도 연결되었다. 《파르지팔》 또한 그 상징성과 등장인물 설정으로 인해 민족주의적, 종교적 우월주의를 담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예를 들어 클링조르(Klingsor)는 이교도이며 ‘정화되지 못한 자’로 묘사되는데, 이는 특정 민족이나 종교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많은 음악학자들은 신화적 장치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을 펼치지만, 바그너라는 인물이 지닌 이념적 그림자는 분명 이 작품 위에도 드리워져 있다.
오늘날 《파르지팔》을 감상한다는 것은 단지 음악을 듣는 행위가 아니라, 그 복잡한 역사적 맥락과 윤리적 문제를 함께 성찰하는 일이다.
특히 이 작품이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히틀러 시대에도 자주 연주되었다는 사실은, 정치적 악용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크게 만든다. 예술이 이념에 휘둘릴 때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고하는 역사적 사례이기도 하다.
파르지팔 이후의 예술, 흔적과 영감
《파르지팔》이 남긴 유산은 방대하다. 이 작품은 말러(Mahler)와 쇤베르크(Schönberg)는 물론, 20세기 실험음악가와 미니멀리스트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그의 영화 속에서 바그너의 정적 리듬을 시각적 언어로 번역하려 했다.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파르지팔》에서 느낀 ‘고통과 구원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해석하려 했고, 작가 볼프강 힐데스하이머(Wolfgang Hildesheimer)는 이 오페라를 철학적 상징체계로 분석했다.
또한 《파르지팔》은 현대 공연예술에서 ‘종합예술’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예시하는 모델이 되기도 했다. 무대, 음악, 철학, 종교, 조명과 시각예술이 한 무대 안에서 공존하는 이 작품은 오늘날의 인터미디어(intermedia) 공연과도 연결된다. 오늘날에도 《파르지팔》은 종교, 철학,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평가되며,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살아 있는 예술로 남아 있다.
※ 우리나라에서 초연은 지난 2013년 10월에 있었고, 장시간 공연이기에 인터미션에 식사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