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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 동심의 화가 - 장욱진의 탄생

by plutusmea 2025. 11. 24.

1917년 11월 26일은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날 충청남도 연기군에서 태어난 장욱진은 이후 한국 회화가 펼칠 수 있는 표현의 폭을 근본적으로 확장한 작가가 되었다. 그는 전통적 정서와 서양 근대미술의 관념을 폭넓게 받아들이되 이를 과장된 기법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간결한 선과 담백한 구조로 정리해냈다. 격변의 시대 속에서도 유지된 그의 일관된 미감은 한국 현대 회화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성취로 평가된다.

 

 

장욱진의 작품에는 늘 일상적 소재가 등장했다. 집, 나무, 새, 가족, 아기, 달처럼 누구에게나 익숙한 대상들이 그의 화면에서 검은 선과 넓은 여백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 하지 않았고 사물의 본질을 보여주려 애쓰지도 않았다. 대신 대상이 지닌 고유한 감정과 기운을 담아내려 했다. 그 결과 그의 그림은 마치 어린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순수함을 지녔으면서 동시에 동양적 정신을 담은 깊이를 품었다. 이러한 이중성은 그를 단순한 형식 속에서도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화가로 남게 했다.

 

그의 예술적 형성에는 일본 도쿄미술학교 유학 경험도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서양 회화와 장식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한편, 전통 회화와의 조화를 스스로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할 때에도 그는 자신의 형식을 강요하지 않았고, 관찰과 사유의 방식을 강조했다. 그는 회화를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는 일’로 여겼고, 복잡한 기법보다 마음의 상태를 정돈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곤 했다. 교육자로서의 태도 역시 그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절제되고 담백했다.

 

장욱진이 남긴 작품 세계는 재료와 표현을 절약하는 방식으로 확립되었다. 화면 속 공간은 지나치게 밀집되지 않았고, 색채 역시 필요한 만큼만 사용되었다. 그는 오랜 시간 자신만의 상징적 언어를 다듬었고 그 결과 특정 작품을 설명하지 않아도 ‘장욱진 그림’임을 즉시 알아볼 수 있는 독창적 스타일이 구축되었다. 이러한 정체성은 그가 개인적 일상과 한국적 정서를 회화적으로 해석한 결과이며, 전후 한국 회화의 한 축을 차지하는 미학적 성취로 평가받는다.

 

그의 탄생일을 돌아보는 일은 한 화가의 일생을 기념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 미술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되짚는 일이다. 장욱진은 서구의 표현방식을 흡수하면서도 과도한 모방으로 흐르지 않았고, 전통적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과거로 회귀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절묘한 균형을 잡아내며 ‘한국적 미니멀리즘’이라 부를 만한 독자 세계를 구축했다. 이 균형 감각 때문에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낡지 않고 새롭게 다가온다. 그림 속 작은 집과 나무와 새가 주는 고요한 울림은, 삶을 비우고 본질을 들여다보는 태도에 대한 메시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